Discoverer. Nam Taehyun
사우스클럽, 유럽 투어 1화





유럽 투어의 첫 시작은 영국이다. 이 사실은 내게 굉장히 큰 의미다. 비틀즈, 오아시스, 콜드 플레이 같은 당대의 밴드가 탄생한 나라이자 음악적인 영감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양’이 난생 처음인 멤버들은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에서 생경함과 새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자극에도 말이다. 그걸 보는 게 재미있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즐거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다. 비행기 안에서 동현이의 앞니가 부러진 것이다. 우리가 런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무렵이었고, 당장 갈 수 있는 문 연 병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을 기약하고,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모두가 식사를 하는 동안, 동현인 거의 아무 것도 못 먹었다.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내 동생이지만 참… 말썽을 일으키는 것까지 날 닮다니. 이렇게 사고 칠 때마다 난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숙소가 있는 켄싱턴은 아담하고 아름다운 흰 집들이 모인 조용한 동네였다. 시차 때문에 잠이 안 와서 호텔을 빠져 나와 밤길을 걸었다. 선선한 바람, 고요한 공기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긴장도 한시름 내려 놨다.
 

다음 날, 예정된 매거진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순조롭게 마치고 멤버들과 돌스턴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빈티지 숍. 최근 ‘옷’에 눈 뜬 건구 형은 거기에서 내가 짚어준 옷을 모조리 다 샀다. 형이 ‘패션’에 이렇게 열정을 불태운 적이 있었나? 내 ‘추천’을 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기분이 꽤 좋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이템 하나 하나가 형한테 진짜 다 잘 어울렸다. 돌스턴에서 그는 영화 트레인스포팅에서 막 빠져 나온 남자가 됐다. 내 덕분에 말이다. 하하! 형. 나한테 고마운 거 다 알아.  



우리의 첫 무대는 캠든에 있는 ‘언더월드’ 라는 곳이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새삼 ‘우리가 런던에서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지하로 뻗은 비좁고 어두컴컴한 계단, 눅눅하고 습한 공기, 이곳을 거쳐간 밴드들의 스티커로 빼곡한 대기실... 전에 촬영 때문에 왔을 때랑 똑같은 풍경이었지만 이번엔 감회가 남달랐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왔으니까.



공연은 너무 좋았다. 관객들은 정말로 음악을 즐겼다. 우리 노래 중 는 블루스장르라 사실 다른 곡들보다 호응이 비교적 적은 편인데, 런더너의 반응은 꽤 뜨거웠다. 역시 뭘 좀 아는 사람들이다.

‘오아시스’를 커버할 땐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오아시스의 나라에서, 다같이 오아시스 노래를 부르며 하나가 되는 순간이라니. 정말로 뿌듯했던 건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달궈지는 남자 관객들의 호응이었다. 우리 모두 벅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동현인 매 곡마다 실수를 연발했다.



무대를 무사히 마치고, 호텔에 들러 짐만 챙긴 뒤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긴장감이 풀리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은 진짜 좋았다. 록스타가 된 기분이 이럴까? 나 오늘은 어깨를 조금 으쓱해도 될 것 같아.



새벽 두 시, 히스로 국제 공항. 이 시간에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걸까? 밤 깊은 것도 모른 채 똘망똘망한 눈으로 시큐리티 체크를 받는 아이를 보면서 피곤하다고 엄살 부리지 않기로 한다.

목과 팔에 타투로 가득한 이십대 청년이 스펀지밥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저 금발머리 아이보다 비실 거릴 순 없는 일. 감기는 눈과 늘어지는 몸을 ‘락 스피릿’으로 다잡아본다. 겨우 짐을 부치고 좁은 비행기 좌석에 몸을 던졌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기대감은 잠시 접어두고 눈을 붙였다.





특유의 독특한 리듬을 가진 스페인어는 언제 들어도 경쾌하다. 여기는 마드리드. 도착 순간부터 귀에 들어오는 라틴 음악이 전부 맘에 들었다. 첫 스케줄은 토크쇼(확인 필요) 출연이다. 스페인어만큼 경쾌하고 밝은 성격의 진행자가 유쾌한 환대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라틴 문화권에서 가장 인기 많은 방송의 유명한 MC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긴장 되긴 했지만, 허물 없이 우릴 대하는 그의 따뜻한 배려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도 곧장 마음을 열었다. 인터뷰 중 그가 “유럽, 특히 라틴 문화권에서 사우스 클럽의 인기가 꽤 높다. 혹시 알고 있었나?”라고 물어왔을 땐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찡했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별처럼 떠오르는 것, 그들이 아주 잠시라도 나를 생각하는 것, 누군가 우리 음악을 듣는 일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팬들에게 계속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녹화를 마친 후, 스튜디오 스태프 한 명이 자꾸만 “옥상에 가보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여러 번 “괜찮다.”고 답했지만 재차 묻는 그. 진행자 아저씨도 옆에서 “꼭 올라 가봐야 한다.”고 거든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옥상은 한국에도 많아.”라고 농담 섞은 대꾸를 했지만, 결국 못이긴 척 따라 따라 나섰다.

문이 열리고, 우리는 ‘오르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했을 뻔한’ 풍경 앞에 섰다. “What a view!” 절로 터진 탄성. 마드리드 시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뷰 포인트가 바로 이 건물의 발코니란다. 그들의 ‘옥상 부심’이 이제야 이해됐다. 만약 마드리드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이 옥상에 다시 올라서 풍경을 전부 눈에 다시 담고 싶다. 빛 바랜 벽돌색 지붕, 은은한 미색 외벽, 게으른 평화가 넘치는 거리, 그 사이를 어슬렁 거리는 큰 개들, 선글라스를 끼고 힘차게 거리를 활보하는 미녀들… 시신경에 또렷이 새긴 그 장면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마드리드는 모든 것이 싱싱하고 호쾌한 도시이다. 과일도, 올리브도, 햄도, 맥주도 신선하고 산뜻했다. 거리에서 불어오는 바람, 뜨거운 햇살은 싱그러웠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벼룩시장에서 파는 물건들, 그 곳에서 마주친 관광객들, 장사하는 아주머니 아저씨까지, 내가 이 도시에서 마주친 모든 것 중 유쾌하지 않은 것이 있었나? 빈티지 마켓에서 옷을 잔뜩 사고 고민에 빠졌다. 이 많은 짐을 어떻게 다 들고 들어가지? 잠시 고민하다 그냥 맥주나 마시기로 했다.

시원하고 청량한 맥주를 한 모금 넘기고, 광장에 드러누웠다. ‘어떻게든 되겠지.’ 스페인 사람들의 느긋함과 낙천적인 마인드에 어느새 나도 물든 건가? 양손 가득 빈티지 옷들을 들고 있는 멤버들도 전에 없이 들떠 보인다. 나도 나지만, 저들은 저 짐 보따리를 어떻게 감당하려는 거지? 질문의 꼬리를 물 새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시간이 됐다. 이제 공연을 준비하러 가야 한다.





열정의 나라답게 스페인 공연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공연이 끝나고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팬들은 거리 한 쪽을 가득 메운 채 밴드 이름을 연호하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덕에 지친 것도 잊고 한껏 흥에 취했다.

아주 잠깐은 ‘마드리드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우리 진짜 이 나라에 와서 사는 것은 어떨까?” 하고 농담을 던지니 옆에 있던 창원이 형이 곧장 ‘좋지’ 라고 대답한다. 가만. 저 형이 좋다고 하는 걸 보니까 뭔가 불안한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아니, 그래도 언젠가 다시 와서 잠깐이라도 살아보고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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