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er. HOOLA
틈새를 찾아서,
도시횡단

프랑스 도시탐사

 

도시는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들이 잎맥처럼 놓인 거대한 숲이자 퇴적층이다. 또한 여러 겹에 걸쳐 쓰여진 두툼한 원고뭉치이기도 하다. 도시 읽기란 그 뭉쳐진 원고지들을 한 장씩 벗겨내며 읽고 해독하는 작업이고, 이는 걷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현대도시에서 자동차의 속도와 도로 스케일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걷기란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한 걷기, 즉 노동의 연장선일 따름이다. 현대인들에게 도시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걷기란 낯선 곳을 여행할 때나 가능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걷기 또한 누군가가 알려준 대로만 걷는다면 무의미하다. 한편,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 하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틈새를 들여다보면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정의되지 않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열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파리, 이곳이 낭만과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을 끌어당기는 두터운 시간의 지층을 품고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닌 이곳의 입구를 찾아 우리만의 방식으로 탐사를 시작했다.  
 


파리 거리   




       
         
이방인인 우리의 눈에 가장 먼저 뛴 파리의 모습은 역시나 세느강을 따라 들어선 거리 위에 축조된 오래된 건축물과 그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파리시의 기원은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우리가 파리 중심지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모습은 ‘오스만 양식’이라고 불리는 19세기 도시 개조사업의 결과물이다. 좁은 길들이 미로같이 얽혀 있던 중세도시의 체계는 당시 급증하는 파리시민들의 삶과 위생상태를 보장할 수 없었다. 또 전염병과 각종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하수도 시설을 비롯하여 도로, 녹지, 미관관리, 도시행정에 이르는 정비사업을 벌이게 된다. 첫 번째 근대도시계획이라 불리는 오스만 남작의 대담한 기획은 대성공을 거두며 서구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능과 미관 측면에서 훌륭히 도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 거리를 때론 걷고 때론 멈춰 섰고, 때론 롤러 스케이트 바퀴에 몸을 맡긴 채 매끄러운 길을 따라 도시를 누볐다. 다리를 건너고, 광장에서 뛰고, 거리에서 춤추고... 사람 눈높이에 맞춰진 도로표지판과 신호체계를 갖춘 도로. 덕분에 휠체어든 자전거든 스케이트든 길을 가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시 어디든 자신의 리듬에 따라 자유롭게 도시를 가로지르는 몸짓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자동차의 스케일과 속도가 아닌 우리의 동선과 운율이 존중받는 느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자유분방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파사쥬 Passage
       
파리는 세느강 위에 가로놓여진 도서관의 거대한 열람실이라고 할 만큼 거리에서 보는 건축물의 입면(파사드)만으로 이곳의 진짜 모습을 알기는 어렵다. 대로변에서 입구 하나만 찾으면 펼쳐지는 19세기. 이 건물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길고 개방된 통로 공간을 들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한 층 더 파리의 고풍스러움에 매료된다.                      

 
 




  

파사쥬는 19세기 초에 생겨난 상점거리다. 각종 상점, 레스토랑, 카페, 잡화점 등이 들어서면서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물론 문학,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지식을 공유하고자 모여드는 부르주아들과 예술인들로 붐비던 자본주의 도시 파리의 상징이었다.
 

이미 아케이드형 쇼핑몰의 모습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그때와 같은 감흥을 느낄 수는 없지만 공간 곳곳에 숨어있는 낡은 질감과 옛 흔적들, 그리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고풍스런 스타일과 고서점, 카페, 갤러리, 부티크 등이 빚어내는 풍경들로 인해 시간여행을 온 듯 잠시나마 그 시절의 환영을 그려볼 수 있다.

 

지하묘지, 카타콤 Catacomb



 

낭만적인 파리의 바닥 아래에는 ‘카타콤’이라 불리는 깊이 30m, 총 길이 300km에 이르는 거대한 지하묘지가 있다. 파리의 카타콤은 여타의 카타콤과는 달리, 로마 식민지 시절 채석장으로 사용되다 18세기 도심을 떠돌던 유골을 모아 만든 납골당이다.




   
당시 파리는 인구 포화로 인한 전염병으로 묘지는 물론이고 도로에 시체가 3m 높이로 쌓일 지경이었다고 한다. 루이 16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이 지하 미로를 활용하게 되고, 몇 년에 걸쳐 이곳에 안치한 시체는 500~600만구에 이르렀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군이 작전 기지로 삼기도 했다. 워낙 공간이 조밀하고 복잡하여 실종사건이 자주 일어나면서 ‘지옥문’이 있다는 도시전설까지 퍼질 지경이 되자 1950년대부터 통행이 제한되기도 했었다.
 




현재도 개방된 코스는 2km 가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금지된 것과 금기는 모반과 모험을 자극한다. 필연적으로 이곳은 활동가, 예술가, 역사학자 등 새로운 발견에 목마른 이들을 끌어들인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만의 루트를 개척하고 그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 공유하기도 한다. 우리의 발길은 철장 너머로까지 뻗지는 못했지만, 채석장 시절부터 현재에까지 이곳에 남겨진 궤적들을 이어붙이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졌다.
 




파리의 저 멋진 건축물들을 쌓아 올린 돌들이 온 곳이자 수많은 이들의 유골이 이름 없이 쌓여있는 곳이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이러니한 역사의 이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공간. 어쩌면 우리의 심연은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축축한 공기를 피해 햇볕을 쐬기 위해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리의 버려진 철로, La Petite Ceinture Paris


  

이곳은 19세기에 개발된 곳으로 파리를 돌던 32km의 철도 선로였다. 원래 상업용 운송수단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폐선로다. 원래는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이후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열차가 다녔다. 하지만 1900년 파리지하철이 건설되고 점차 운행량이 줄어들다 1970년대 작동을 멈추게 되었다. 오늘날 버려진 철도는 부분적으로 개방되어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구역은 대중에게 공개되어있지 않다. 이곳은 카타콤과도 물리적으로 겹쳐진다. 심지어 카타콤으로 몰래 진입하는 가장 접근성 좋은 입구는 17개의 버려진 기차역 중 하나를 경유한다. 



     
     
우리는 이곳을 탐험하기 위해 철도 트랙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무런 방해없이 철도 트랙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쪽의 일부 구역이 다른 열차에 의해 재사용되고, 일부 터널은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넘어 터널 가까이 다가가 보았지만, 굳게 닫힌 철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요원하다. 하지만 자연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생물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각종 식물들이 철로 주변을 뒤덮고 있었고 작은 동물들이 이곳을 서식지 삼아 살아가고 있었다.


 

                
기관차들이 수없이 달렸을 이곳은, 우리에게 단지 작은 아름다운 숲처럼 보였다. 놀라운 것은 자연스럽게 이곳을 점유한 동식물들을 보존하면서 역사적인 시설도 유지되고 있다. 이곳은 또한 그래피티 예술가들을 위한 놀이터이기도 하다. 밋밋한 벽들은 개성있는 그림으로 뒤덮혀있다. 도시의 인공물과 자연의 야생이 겹쳐지는 공간, 우리는 인간이 떠나간 자리에 올 미래를 미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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