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er. CALIFORNICATION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험머투어

바야흐로, 1996년.
새내기 시절을 지나 운동권 선배들도 결국은 말보로와 나이키와 리바이스의 애용자라는 걸 깨달은, 그러니까 ‘이제는 세상 다 알았어!’라고 착각했던 2학년 때였다.

무더운 어느 날, 강남역에서 호기심이 상당히 많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했다. 나는 호기심 많은 여자친구와 시티 극장에 들어가 영화 <더 록>을 봤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호기심 많은데 질문까지 많은 여자친구는 물었다.
“오빠. 숀 코네리가 샌프란시스코 다 부서뜨리면서 몰던 차 뭐야?”
운동권의 취향 뿐 아니라, 연애의 기쁨까지 알아 ‘세상 다 알았다’고 착각했던 나는 그만 폭염 속에서 얼음이 돼버리고 말았다.

탱크처럼 생겼는데 지프이고, 지프인데 속도는 빠른데다, 산에서만 달릴 것 같은데 도심에서 질주하는 ‘대체 저 괴물처럼 생긴 차는 뭐란 말인가?’

뇌를 얼어붙게 만든 그 차는 험비였다. 얼마 후 영화의 인기 덕에 군용차 험비는 민간용 험머로 출시됐다. 하여, 20년 전에도 결심하기 좋아했던 나는 당시 여자 친구와 사귀는 동안 인생에 결심 하나를 또 추가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저 차를 타야겠어!’
숀 코네리처럼 머리가 다 빠지기 전에. 


   

시간이 흘렀다.
호기심 많고 질문 많은 여자 친구는 이름 모를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나 역시 호기심 많은 그녀조차 모를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 나는 적당히 염세적이고 적당히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험비 질주’같은 진정 꿈같은 꿈이야 서랍장에 쳐 박아 둔 채 일상의 무게에 버티며 살아왔다. 그러다 이번 기행을 준비하며 역시나 호기심 많고, 새로운 걸 주저 않는 사진가 C군이 말했다.
‘캘리포니아 사막에서의 험머 투어, 이거 어때?’

순간 잊었던 96년의 결심이 떠올랐다.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 험비.
비록 샌프란시스코 도심은 아니지만, 같은 캘리포니아 주 아닌가.
비록 험비는 아니지만, 같은 모태에서 나온 민간용 형제 험머 아닌가.
꿩 대신 닭이고, 이 대신 잇몸이고, 잇몸 대신 인사돌이라고!

자칫하면 숀 코네리처럼 이마가 남가주만큼이나 넓어지기 전에 다시 기회가 왔다.
‘이봐 결심을 했으면, 볏단 대신 무라도 잘라야지’ 라며 캘리포니아가 인생의 스승이라도 되듯 다시 알려준 것이다.









하여, 지금 팜 데저트(야자수 사막)으로 가고 있다. 그곳에서 험머를 타고 사막을 달릴 것이다. 팜 데저트까지 가는 길은 미국 대륙 횡단하는 영화에 나올법한 황무지였다. 거대한 황색 산을 배경으로 선인장이 태양에 말라가고 있었다.
나무는 채권자를 만난 빚쟁이 낯빛처럼 바래가고 있었다.

기이하게 간혹 야자수가 줄지어 자라고 있었는데 호기심 많고, 새로운 걸 주저하지 않으며, 동시에 남미 전문가인 사진가 C군은 이렇게 말했다.
‘이거 완전 멕시콘데!’

그 말을 증명하듯, 차 안으로 침입하는 햇살이 데킬라처럼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차량 계기판은 ‘F 122°’를 가리켰다. 
우리는 벽안의 하멜을 만난 조선인처럼 당황했다.
“화씨 122도가 몇 도야?”
검색해보니, 섭씨 50도였다.
순간, 50도 보다 더 뜨거운 탄성의 쏟아졌다.

“젠장! 오십도라니!”(나)
“내가 멕시코라고 했잖아!”(자기 주장 강한 C군)
“형. 미국 가자고 했잖아요.”(여전히 월드뮤지션이 되고 싶은 S군)

당장 렌트카 본네트에 기름을 쓱쓱 뿌리고 소시지를 100개 후다닥 깔면 즉석 핫도그 장사를 해도 될 듯했다.

순간, 호기심 많고, 두려움 많고, 조사하길 좋아하는 C군이 어제 보여준 기사가 떠올랐다.
“사막 운행중, 차량에서 탈진자 속출”
“기록적인 무더위로 캘리포니아 중부 비행운항 금지”

‘뭐야, 영어잖아’라며 시큰둥하게 밀쳐냈지만, 24시간이 지난 후 그 때의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급속도로 해석됐다. ‘가급적 여행 자제 요망’, ‘심신 노약자 외출 자제 요망’ 등의 불길한 까마귀 울음 같은 경고들 말이다.
그 탓인지, 가는 도중에 사막 투어 담당자가 내게 세 차례나 전화를 해서 우리가 탈 차는 에어컨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입안으로 화마 같은 공기가 훅 들어왔다. 순간 숨이 턱 막혔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목덜미에 땀이 빗물처럼 흐른다.
선글라스의 코걸이에도 등에도 심지어 손가락에도 땀이 고여 이 글을 쓰는 핸드폰 타자기가 땀으로 번져 자꾸 오타가 난다. 몇 번째 썼다 지웠다 다시 쓰길 반복한다.

문학사상 가장 더운 환경에서 집필한 작가는 아무래도 그간 쿠바에서 쓴 헤밍웨이일 법한데, 오늘자로 내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 같다.
50도가 되는 폭염 속에 뜨거운 연석에 앉아 글을 쓰고 있자니 2차 대전에 참전해 사하라 사막으로 파병 간 기록관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글을 쓰다 흑사병에 걸려 저승에라도 간다면, 사하라 기록관과 동호회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방금 우리를 안내할 브루스가 왔는데 오늘 날씨는 '기록적인 더위'라 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기록하고 있습니다”라며 유머를 건넸는데, 그가 더위를 먹었는지 무시를 했다.
“저는 한국의 소설가입니다. 이 날씨에도 기록을 하죠. 하하하”라며 말을 이으니,
그가 “참 덥죠”라며 맥락과 0.000001밀리도 상관없는 답을 했다. 그는 더위를 먹은 듯했다.

나는 험머에서는 에어컨이 잘 나온다 했으니, 차만 타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 뒤 친절한 신사답게 뒷좌석의 가운데에 끼어 탔다. 내 왼쪽에는 호기심 많고 땀도 많은 C군이 한증막에 입장한 비만인처럼 땀을 흘리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세상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듯한 미국 중년 여성이 ‘내 몸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고소할거야’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여, 속으로 ‘나는 고환이 없다. 나는 고환이 없다’ 라며 주문을 외우며 양 다리를 완전히 밀착시키며 앉았는데, 역시나 에어컨이 잘 나온다고 세 차례나 안내 받은 험머는 자신의 온힘을 다해 연신 더운 입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클럽에서 초면에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섞어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름이 끼치듯, 섭씨 50도에 더운 바람을 맞으니 몸이 미쳤는지 이상하게 닭살이 돋았다.







역시 인생의 스승 캘리포니아는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동양의 가르침까지 선사했다. 마음만 먹으면, 섭씨 50도에도 소름이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가이드 브루스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는지 운전을 하며, 갑자기 사막의 생성 이유와 인간의 적응에 대해 일장 연설을 쏟아 냈다.
이상한 기후 속에서 토익 듣기 평가를 2배속으로 하는 심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사막 설명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설명하고, 해설하고, 알려줬다.
마침내 사막에 도착하니, 언덕 중턱부터 해가 어깨 높이에 걸렸다.
아아, 드디어 대자연이구나, 라고 감상에 빠지려는 찰나, 역시 브루스가 나타나 ‘궁금하지 않아?’라는 표정으로 설명하고, 해설하고, 알려줬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돌이켜 보니, 그의 업무의 8할은 설명이었고,
1할은 운전이었고, 1할은 우리가 준 팁을 받을 때 보인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 미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에서 험머를 타고 달릴 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릴 적에 꿈꿔온 것들을 어른이 되고 나서 해보면, 별 것 아닌 게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기대들이 힘겨운 삶을 버티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살아내게 하는 힘이 아닌가.
젊은 시절의 나는, 스무 살 남짓한 나는 언젠가는 험머를 타보겠다며, 도서관에 가서 별이 뜰 때까지 책과 씨름하고, 무더운 방학에도 땀 흘리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던가.’







캘리포니아는 역시 인생의 스승이라는 듯, 삶에서 진짜 값진 순간은 꿈을 이루는 그 짧은 순간과 그 뒤에 몰려오는 허망한 시간들이 아니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기대하고 준비하는 길고 아름다운 순간들이라는 걸 알려줬다.

역시 여기는 체력이 충전되고, 글도 많이 쓰고 싶어지는 캘리포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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